전통문화대전망 - 전통 미덕 - 도덕 역사관의 꿈: 유토피아 사상과 그 특징

도덕 역사관의 꿈: 유토피아 사상과 그 특징

결론적으로 송유의 이상 사회관은 전반적으로 순이론 저작에 속하며 인류 사회의 가장 이상적인 방식을 묘사하려고 한다. 그것이 그린 아름다운 미래는 사실 실현할 수 없는 이상이다. 본질적으로 이상국의 유토피아 디자인 방안이다. 유토피아는 이런 관념이 생겨난 현실 환경과 일치하지 않는 관념을 가리킨다. 이 아이디어의 목적은 이런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현실 환경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상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유토피아는 절대적이고 타협하지 않는 완벽주의 개념이기 때문에, 그 실현은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의 완벽과 관련이 있다. 이 목표의 완벽함 때문에 이 사상의 제안자들이 실제 문제에 대한 인식과 처리를 방해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유토피아 사상이 가득한 나라로, 노자의 소국 과부민, 맹자의 단맛, 대동의 천하 큰절, 왕망 왕천제도에 이르기까지 북위 () 당 () 의 균전 () 에서 태평천국 () 의 균전 () 에 이르기까지 손중산 () 의 미국 평균지권 () 은 각종 유토피아 사상이 중국인의 역사 변천에 대한 인식을 지탱하고 끌고 있다. 주류 유교 정치철학의 유토피아 성질은 중국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쳐 후세 사람들이 반성하고 토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송대 이학이 출현한 후, 거의 모든 이학 거장들이 사회역사의 이상 모델에 대해 독특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그들의 사상에 포함된 이상과 이러한 이상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이념은 이미 전통 중국인의 의식에 보편적으로 스며들어 중국인들이 현실 세계를 비판하는 출발점과 현실 세계를 뛰어넘는 종점이 되었다. 송유학을 대표하는 유교 사회사 사상에 포함된 유토피아 사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런 유토피아 사상의 사회현실 기초는 농업국가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강한 소규모 생산자평균주의 의식에 있다. 그 궁극적인 요구는 전 사회의 물질적 부와 정신적 부의 평균 분배와 소유이다. 송유감이 이노다제의 꿈 이념을 고수하며 고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둘째, 이런 유토피아 사상의 지향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이다.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그의 사상 원형은 대부분' 예기' 와' 주례' 에 기록되어 있다. 둘째, 송대 유학을 예로 들자면, 그들이 세운 이상사회는 고대의 당 () 우 () 황금시대에 존재했으며, 모두 복고 사상가였다. 농업사회의 단순한 생산생활방식과 사회관계의 반영으로 이런 이상은 사실상 강한 보수 경향을 가지고 있다. 셋째, 유교를 바탕으로 한 유토피아 사상은 미래의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순수한 묘사가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현실 세계 개조에 대한 강한 수요다. 미래 디자인과 현실 비판의 결합으로, 선험적 이상과 현실 정치 운영 모델을 결합한 역사 철학과 정치 이론이다. 넷째, 유교의 유토피아 사상은 사회경제, 정치, 문화의 이상화 디자인에 강한 윤리적인 색채가 섞여 있다는 점도 가장 특색이 있다. 골자 윤리가 주도하는 도덕규범은 중국 사회가 전통 궤도에서 이상적인 위치로 나아가는 주요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 문명이 생겨난 이래 모든 역사 과정을 관통하는 역사와 윤리의 비극적인 충돌에 직면하여 송대 이학 거장들은 도덕의 우월한 깃발을 높이 들고 도덕의 가치가 경제, 정치, 법률, 과학, 예술보다 높다고 굳게 믿고 도덕은 영원하다고 생각하며 현실 사회의 질서 있는 존재와 이상 사회의 실현은 반드시 도덕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 반대로, 이런 통제의 실패는 역사가 형용할 수 없는 암흑시대에 들어선 것을 의미한다. 도덕사관이 역사를 해석하는 정수다. 도덕사관의 기본 특징은 인류의 윤리활동을 역사의 기본 가치 선택과 궁극적인 목표로 보는 것이다. 인간성과 인륜의 관점에서 각종 사회 제도가 파생되어 사회 구조의 합리성과 발전 동력을 설명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공자부터 유교 정치 사상의 궁극적인 목표는 창조이다.

이런 사회질서 수립의 관건은 실제 정치운영이 아니라 정치기능이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발휘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 즉 정치기능 자체가 절대적으로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 지도자가 도덕적 모범과 성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정치 지도자는 도덕을 가져야 한다. 이는 사회 모든 사람의 도덕감을 극대화하고 사회 인간관계에 깊은 윤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조화로운 사회 질서가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다. 송대 이학 대사는 그들의 정치철학과 역사철학을 논술하면서 그들이 확고한 윤리주의자임을 보여 주었고, 그들의 정치사관은 유토피아적이었다. 그들은 이상적인 정치는 순수한 도덕정치여야 하고, 순수한 도덕정치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당유 통치의 3 대 모두 존재했다. 한편, 도덕정치의 기준으로 후세를 판단한 결과, 현실 환경이 금융의 거울에 노출된 상황에서 후세의 정치 기능은 3 대 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상황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송유가 창조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사회 모델은 장재의 이론에 있다. 광전 봉건제도와 종법제도를 경제 정치 사회 3 대 기둥으로 전원 산수화 같은 유토피아를 구축했다. 특히 엄격한 종법관계를 수립해 송대 유가윤리정치사관의 특징을 더 잘 표현했다. 봉건종법 제도 하에서 혈연 감정과 실용적 이성이 결합된 사회조직, 이과부, 부력 약함, 인간관계에서 충성과 용서가 성행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그런 따뜻한 안개에 휩싸여 그야말로 인간의 천국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유토피아 사상이 흩어져 있는 꿈의 의식일 뿐이다. 이런 꿈같은 의식은 현실과 이상 충돌로 인한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고 불합리한 현실과 합리적인 수요 충돌을 달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와 도덕 사이의 분리와 장력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이상적인 사회의 실현이 결국 역사적 진보라는 역사적 사실에 달려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 전체에 도덕의식을 세우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를 세우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도덕의식은 사회정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성을 핵심으로 혈연과 종법 관계를 유대로, 명분과 등급을 제한적인 내용으로 건립한 것이다. 이런 도덕규범은 종교적 신념의 성격과 정치 이데올로기를 통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사실 남성권 사회 정치 제도와 사회생활에 대한 총결산일 뿐이다. 윤리정신을 지주로 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사실 송유가 묘사한 인간 천국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 역사주의와 윤리주의의 이율 등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마르크스는 일찍이 봉건 사회를 예로 들어 멋진 분석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봉건 생산 방식 중 두 가지 대립적인 요소가 있는데, 사람들은 봉건주의의 좋은 방면과 나쁜 방면이라고 부르지만, 결국 나쁜 방면은 항상 우세하다고 말했다. 나쁜 방면이 투쟁을 일으켜 역사를 형성하는 운동이 생겨났다. 만약 봉건 통치 시대에 경제학자들은 기사의 미덕, 권리와 의무의 기묘한 조화, 도시의 종법생활, 농촌의 가정수공업의 번영, 그리고 노조, 상회, 길드가 조직한 공업의 발전을 보았다면, 요컨대 그들은 봉건주의의 모든 좋은 방면에 깊은 감동을 받아 이 그림의 모든 어두운 면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투쟁으로 이어진 모든 요소가 소멸될 수밖에 없었고, 자본주의의 발전은 아직 초급 단계에 있을 때 끊어졌다. 경제학자들은 자신에게 역사를 지우는 터무니없는 임무를 주었다. 마르크스는 항상 선과 악을 역사의 변증 전진에 두고, 일정한 역사적 조건 하에서 악의 역할을 긍정한다. 물론 이런 악은 역사 발전의 한 형태일 뿐 악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 기능은 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한 사회의 완벽함은 단순한 추상적인 도덕기준으로 측정할 수 없고, 역사적 기준으로만 측정할 수 있다.

사실, 도덕규범으로 역사를 설명하고 인륜관계로 다른 사회관계의 발생과 발전을 제한하는 것은 역사의 주도권을 박탈할 수밖에 없다. 유토피아의 아름다운 꿈은 사회 유기체의 활력을 억누르는 가장 좋은 이유가 될 수 있다.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 칼 레이몬드 포퍼는 유토피아가 역사 결정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전체주의의 사상적 경향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역사 결정론은 발전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회 유토피아 프로젝트 전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둘 다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영원히 과학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점진적인 회복에 만족하지 않고 진보를 모색하고 있다. 그들은 더 격렬한 방법을 채택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모두 사회의 역사적 추세를 판단하거나 당시의 수요를 확정하여 사회의 진정한 목적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사회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역사적 결정론의 도덕 이론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유토피아 계획을 주창한 대부분의 작가들은 계획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어한다.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우리가 좋든 싫든, 우리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토피아 프로젝트의 디자이너와 건설가의 독재의식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력을 집중하는 것이 쉽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 사이에 흩어져 있는 지식을 집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집중은 집중된 현명한 사용에 필수적이다. 이 사실은 심원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가 할 수 있는 이상,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미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는 개체 간의 차이를 없애고 자신의 문제를 단순화해야 한다. 그는 반드시 인민과 미국의 이익과 신앙, 교육과 선전을 통제하고 단결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시도를 통제하는 이런 정신은 인간의 마지막 가능성을 발견하는 진정한 사상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분명히 사상의 자유, 특히 비판적 사상의 자유와 양립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유토피아 프로그램, 권위주의에 대한 미국의 의존은 정치적 전능한 통제로 이어지며 개인이 무조건 집단에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 개인은 집단 관념과 행동 패턴에 대한 절대적인 정체성 외에 현실적인 인격이 없다. 그렇게 하여 인간의 왕성한 창의력,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사변능력, 진리에 대한 호기심은 골자 윤리의 함정에 말려들었다. 이런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권력에 대한 탐욕과 추구가 전례 없는 강화를 받았다. 개인이 권력을 갖게 되면 집단의 이름으로 다른 개인을 지배할 권리가 있는데, 이런 개인에 대한 의존은 그들의 주동성을 박탈하여 사회 전체의 보수 심리상태가 전례 없이 강화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권위 있는 정치 이념이 사회에 대한 강력한 통제로 인해 도덕규범은 내면의 자율이념이 아니라 외적인 타율로 바뀌었다. 사실 도덕은 규범적일 뿐만 아니라 주관적이다. 도덕의 본질은 규범성이 아니라 주관적이다. 어떤 도덕규범도 행동주체에 의해 이해되고, 행동주체의 고유 신앙이 되고, 행동주체의 의지와 하나가 되어 의무감, 책임감, 도덕감정이 생겨나고, 결국 도덕활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덕의 규범은 주체성의 규범이고, 도덕의 본질은 도덕의 주체성에 있다. 유교, 특히 신유가는 개인이 선험적 윤리 원칙을 자각적으로 인정하고 인민들 속에 뿌리를 내리도록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일반인들이 선험적으로 등교하는 윤리본체론이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어떻게 깊이 이해할 수 있는지를 해결하지 못했다. 도덕적 책임과 의무는 개인의 확고한 신념과 자각적인 선택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러한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기를 꺼린다. 이런 식으로 윤리정신을 바탕으로 한 이상적인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의 도덕감은 매우 나쁘다. 이것이 바로 덕치국으로 완벽한 사회를 추구하는 폐단이다.

가장 근본적인 실수는 범도덕주의를 바탕으로 설계되고 세워진 영원하고 완벽한 사회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를 영원하게 하려면 변화의 진행을 막고 가장 엄격한 사회 통제 하에 제한된 수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창조정신에 따라 사회 진보를 초래할 수 있는 어떤 일도 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막는다. (존 F. 케네디, 자기관리명언) 이런 식으로, 유토피아적인 이상은 꿈이 이루어져도 평범하고 생기가 없는 사회일 뿐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윈스턴, 희망명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