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대전망 - 전통 공예 - 한나라에 의해 쫓겨난 유목민들을 왜 신의 분노라고 불렀을까요?
한나라에 의해 쫓겨난 유목민들을 왜 신의 분노라고 불렀을까요?
훈족은 사실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전설적인 민족입니다. 당시 흉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중앙 평원의 일부 왕조는 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했습니다.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만리장성은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설된 것으로, 당시 흉노가 우리에게 얼마나 위협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한나라의 우 황제가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몇 차례의 대규모 반격 전투를 통해 마침내 흉노를 물리치고 한나라와 흉노의 지위가 역전되었습니다. 이후 남흉노는 한나라에 의존해 계속 존속했고, 북흉노는 항복을 거부하고 유럽으로 가서 정착할 곳을 계속 찾아 나섰는데...?
그 후 200년 동안 훈족은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재기했습니다. 3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훈족은 알란트에 등장하여 유럽 국가들에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훈족은 당시 아란 왕국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멸망시켰죠. 서방 국가들이 대응하기 전에 훈족은 철혈 기사단을 이끌고 동고트족을 침략하여 불태우고 약탈했습니다. 중원 왕국과의 전투에서 얻은 교훈과 전술을 이들 국가에 적용하여 유럽 영토를 가차 없이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그런 다음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가 등장하여 50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대규모 확장을 시작했고 유럽 국가들에 대한 압박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로마와 다른 국가들은 힘을 합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동맹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훈족과 카탈루냐 평원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는데, 이 전투는 매우 치열했습니다. 아틸라는 결단력 있게 군대를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이듬해 갑자기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북부의 모든 도시를 파괴하고 로마를 더욱 압박했습니다. 서기 46년, 아틸라는 군대에 전염병이 돌자 귀환을 선택했고, 서로마는 아틸라와 화해했으며 동로마에서 지원군이 전장에 도착했습니다.
이 두 번의 전투를 통해 유럽인들은 훈족의 힘을 충분히 인식했고, 훈족은 신이 자신들을 벌하기 위해 보낸 민족이라고 믿었으며, 따라서 신의 채찍을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아틸라가 젊은 나이에 죽지 않았다면 아마도 유럽 전체가 훈족의 철마에 정복당했을 것입니다.